 초식동물
by 카일리 |
 skin by 쿠우 |
1. 새벽 3시에 일어난다. 일요일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행복감에 푹 젖어 으하하하하!!! 하고 야새벽에 웃으며 다시 잠자리로 기어들어간다(...이때는 정말이지, 손가락을 씹어먹고 싶을 정도로 기쁘다!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어!!! 캬캬캬) 3시간 정도 더 잔후 6시에 기상. 주말에는 더 이상 늦잠을 잘 수 없다. 왜냐? 시간이 아까우니까!!!(버러러럭)
2. 몬치 카오리 만화책을 본다. 오늘 아침에는 "제멋대로의 키친" 이었다. 몬치 카오리의 만화에서 공(攻;)들은 대개 굉장히 샤프하게 생겼고[특히 수(受;)에 비교하자면 더욱 더 그렇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든 무척 조숙한데 반짝반짝 광선을 터트리는; 눈망울을 빛내다가 어느 순간 울먹거리는 수 때문에 엄청나게 고민을 한다...; 근데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든다 -_ㅜ 몬치 카오리 만화를 보고 있을 때는 어느 순간부터는 무릎에 팔을 괴고는 흐뭇하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그냥 개인적인 감상이긴 하지만...작가는 매우매우 꼬여있기는 한데 그걸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즐기거나 그런 자신을 재밌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걸로 두어시간을 보내고 화뜩 정신이 든다. 엉엉엉 나의 일요일이 또 이렇게 흘러가고 있어....ToT
3. 세탁기를 돌린다. 5일치 스타킹을 보며 손으로 빨까말까 망설이다가 에이씨, 하고 돌돌돌 말아 세탁기 통으로 던진다; 이 중에 3개 정도는 살아남겠지 않겠어? 하며(요행을 바라는 게 속 편하다) 세탁기 버튼을 누르며 드럼 세탁기는 언제쯤 살 수 있을까...하고 망상 한 컷;; 내가 주위에 이렇게 가전제품을 사고 싶다는 말을 하면 다들 "차라리 결혼을 해. 그럼 한 큐에 다 생기잖아. " 라고 한다. 그러나 결혼해서 생기는 것은 가전제품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으으으...T_T 하여튼, 세탁기를 돌리면서 기다리는 시간엔 웹서핑을 하거나, 읽다가 바닥에 팽겨쳐 둔 책을 끌어다가 읽는다.
4. 노원정보도서관에 간다. 오드리 니페네거의 "시간 여행자의 아내" 를 반납할 예정. 나는 이 책을 읽고 "헨리" 라는 이름을 들으면 으례 떠오르곤 했던 콧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로맨스 그레이의 이미지가 아닌, 까맣고 다소 긴 머리칼에 달리기를 좋아하는 마르고 장난스러우며, 그리고 온통 뒤죽박죽인 남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 왜 그래? " " 아, 우리 이제 어떻게 견디지? " " 견디다니, 뭘? " " 시간이 너무 없잖아. 이렇게 아까운 시간을 어떻게 잠으로 다 허비하겠어? " " 이제 시작에 불과해. 그러니까 우린 줄곧 함께 있으면서 이 세상에 남은 시간이 아직 많은 척 하면서 지내면 돼. " " 그래도 매일매일 같이 있을 시간이 줄어들 텐데. 그러다 완전히 없어질 테고. " " 그럼 처음부터 시간이 아예 없는 게 좋겠어? " " 아니,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언제나 바라며 달려왔던 시간이야. 내 삶의 시간이 시작된 뒤로 줄곧 말이야. 그리고 내가 여기서 멀어지면 이 순간은 내가 달려오던 방향에서 지나치는 방향으로 이만큼쯤 와 있는 셈이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여기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고, 다른 시간들은 다른 어떤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거야. "
오늘 빌리려고 하는 책은 아사쿠라 다쿠야의 "4일간의 기적" 과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이다. 읽고 싶은 책이 있다는 건, 신난다. 몇몇 가지 이유와 마찬가지로, 난 이래서 세상이 더 좋다.
하나님, 주일을 주셔서 땡큐 베리 소머취!!! 전 당신이 얼마나 멋진 분이신지를 (자주 까먹곤 하지만;) 절대로 잊어먹지는 않아요. 그렇잖아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전 또 월요일부터 주말을 기다릴테니까요... 하지만, 하나님 주말은 너무 짧아요. 두 어시간만 더 얹어주세요T_T
1. 국민학교(호칭에서 세대차이 나는구만;) 때 제일 열심히 했던 숙제는 일기쓰기였다. " 참 잘했어요" 상을 받을 작정을 하고 (고작해야 10살짜리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거 자체가 가증스럽다-_-) 빽빽히 일기장을 채웠었는데 결국 개학날 선생님은 내 이름이 아니라 다른 애 이름을 불렀다. 그 이후로 일기쓰기를 뚝 멈췄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칭찬이 없으면 도무지 배터리 충전이 안 되는 타입이다;
2. 두번째로 좋아했던 것은 독후감 숙제였는데, 우리 때는 공상과학소설류가 많았다. 지금도 그 스토리라인이 가끔 긴가민가 하고 떠오르곤 한다. 타임머신을 써서-_- 쥐라기 때로 가서 무슨 광물을(마그네슘 뭐 이런 거는 절대 아니었고;오메가 3? 아니 이건 영양소 이름이고;; 무슨 삼방면체 어쩌구 저쩌구 했는디....에라잇 모르겠다)구하다가 주인공 남자애의 삼촌이 죽고, 허지만 이로 인해서 악한이 응징받고;;;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는데...난 이 소설을 도합 50번은 더 읽은 것 같다. 읽을 때마다 다른 책을 읽는 것처럼 또 재밌는기라...-_-;;; 그리고 그 이후에 쥐라기 공원이 영화로 나와서 보면서 (티라노사우르스를 보며) "아하, 걔가 쟤구나!!" 했었다. 이것이 바로 교육의 힘이냐...._-_
3. 왜 뜬금없이 방학숙제라고 하냐믄, 새로 들어온 직원이 보이길래 물었더니 연수생이란다. 얼굴이 진짜 순진하게 생겨서 중딩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인데, 오후 3시만 되도 코밑이 거뭇거뭇해서;;; 아 대학생이구나,하고 생각했다(미안;)
나 : 방학이에요?
연수생 : 네.
나 : 좋겠다...T.T(거의 울먹울먹했음...진짜 울고 싶을 정도로 부러웠어!!!!) 몇 학년인데요?
연수생 : (순간 몹시 쑥쓰러워하며;) 1학년이요...
나 : (질시는 몇 억배로 커진다T_T) 1학년이 무슨 벌써 연수를 해요!! 열라 놀아야지!!!!!
"열라" 라는 말을 쓰고 순간 당황했지만; 연수생은 설마 그런 어투를 자신이 들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무척 착해서, 내가 서류를 찾다가 밀려오는 전화에 계속 전화받으랴 캐비넷 뒤지랴 뛰어다니니까 뒷머리를 긁적거리 면서 "제가 찾아드릴게요" 하고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찾고자 하는 서류는 못 찾고 말았다...T_T
어째야 쓰까나.....엉엉엉!!!
" 당신도 알겠지만 " 그녀는 무대장치 한쪽 벽에 기댄 채 박하색깔의 물을 마시면서 말했다. " 당신도 알겠지만, 내가 당신에게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라구요. 내 나이의 여자가 연애할 때처럼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하지만..." 그녀는 빙긋이 웃었다. " 나는 오직 그이만을 사랑하고 있어요. " " 그이라니 누구를? " 그는 더 화가 났지만 다시 누그러졌다. 그의 질투는 그것이 단지 내일에 대한 두려움과 금전상의 궁색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처럼 비굴하다 해도 그를 미치광이로 만들기고 하고 또 점잖게 만들기도 했다. 바로 그것이 그녀가 항상 다른 애인들로부터, 또 누구이건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얻어낼 수 있는 성과였던 것이다. 관객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그날 저녁 이태리에는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그 고대극장에는, 그 얼간이들 말마따나, 옛날의 영화를 위해 현대의 과학 문명이 총동원되어 구석구석에 수십 대의 영사기와 수백만와트의 전구들이 그 극장을 사정없이 파헤쳐 놓고 있었다. 딱 벌어진 어깨를 흔들며 그녀는 소년을 향해 몸을 돌리고, " 잠시 후엔 내 차례로구나 " 하고 말했다.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육개월 이상이나 이 도시 저 도시로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는 그녀와-적당하게-사랑을 했고, 또 과히 심하지 않게 그녀의 주머니를 털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점이 그가 또한 그녀를 몹시 원망하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베를린에서, 뉴욕에서, 또는 로마에서이건간에-그녀는 무대에 서기만 하면 자기의 몸무게와 주름살과 그리고 그녀 뒤에 남아 있는 자기조차도 망각해버리는 것이었고, 행복감에 도취된 청중들은 어둠속에서, 그녀의 음성이 활짝 피어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비참하면서도 감미로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느낌을 알고 있었다. 무대에 오른 순간 그녀에겐 과거의 세 남편이나 서른 명의 애인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 순간에는 미창을 든 군인도 덜 중요했다. 왜냐하면 그 군인은 적어도 연극에 필요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청중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는 일종의 반감을 가지고 자기 곁에 있는, 너무도 풍만하여-가끔 그가 음란하다고까지 생각하는-이 육체덩어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육체에서 그 목소리, 저속한 음악광들을 현혹시키는 그 외침이 울려나오는 것이었다. 아냐, 그는 그녀에게서 가능한한 빨리 최대한으로 짜내고는 잽싸게 그녀를 버리고 달아날 것이다. 나이 삼십에 접어든 어느 여자의 들러리 노릇을 하기 위해 비참한 생활을 하거나, 남의 비위를 맞추며 살고자 할 사람은 없을 게다. 설사 그 부인네가 천재라고 할지라도! <나는 금발이니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나는 금발에다 잘 생기고 남성적이거든. 라까치오니는 한물 간 여자야. 그래 맞았어. 한물 간 여자니까, 그녀는 나한테 더 비싼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구.> 오케스트라가 점점 맥이 풀리는 것을 보니 마지막 막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점점 멀어져 가더니 그에게로 다시 되돌아왔다. 이제 그녀의 이마는 땀으로 번득였고, 사랑도 가져다 줄 수 없는 좀 광적이고도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어린애같은, 거의 우스꽝스런 몸짓을 하며 그에게 기대왔다. 그녀의 의상담당자가 손에 박하색 잔을 들고 그 곳으로 오자, 그녀는 숨도 쉬지 않고 그것을 마셨다. " 이음악 어떻게 생각하세요? " 하고 그녀가 물었다. 그녀는 진주빛나는 피로한 눈꺼풀을 치켜뜨면서 그를 주시했다. <저이가 서른살이라니. 맙소사! 날씬한데다 미남이어서 그 어느 이란 공주의 사랑도 받을 수 있을 거야. 쭈글쭈글하고, 분장을 하고, 땀으로 엉망진창이 된 얼굴로, 어떻게 감히 그에게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을 수 있담?> " 이 오페라는 모르겠는걸. " 대답하는 그의 말투는 건방졌다.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 " 내 평생 꼭 세 번 이 곡을 불렀는데요. " 잠시 있다가 " 그런데 그때마다 세 번 다 그를 다시 만났어요. 오늘 저녁에도 그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 누굴 말이요? " 그러나 그녀는 벌써 그의 팔을 살짝 두드리고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쪽으로 가버렸다. 그 지휘자라는 친구는 형편없는 녀석으로, 오직 그녀와 그녀의 명성을 이용만 하는,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녀석이었다. 그가 그런 사실을 그녀에게 미리 귀뜸해 주었는데도 그녀는 웃으면서 " 당신도 알다시피 그는 음악가예요. " 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어조는 유태인에게 유태인들 중의 한사람에 관해서 얘기할 경우 가끔 볼 수 있는 부드럽고도 거만스런 변명투였다.
그녀는 지치기 시작했다. 그 장소와 그녀의 애인에게 싫증이 났다. 하지만 그 장소와 그 애인은 최신 유행을 따른 것이었다. <스니프클럽>과 <커트>, 그 미남 커트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미남자들과 나이트클럽을 좋아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특히 그날 저녁엔 그런 것들이 지긋지긋하게 여겨졌다. 서른 살이 넘고 보면, 어떤 상투적인 말투로 사람들을 흡족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데, 특히 그런 어투들이 <스니프>의 경우처럼 조금 지나치게 떠들썩하거나, 혹은 커트처럼 좀 퉁명스러운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그녀는 하품을 했고, 그러자 그는 뚫어지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브뤼노 생각하는 건가?” 그에게 브뤼노에 관한 얘기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브뤼노는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이었는데, 일가친척도 한사람 없는 성격분열자였다. 거의 고의적으로 그녀는 그와 헤어졌고, 그를 차버리고 나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했다. 이제 그는 멀리 가버렸다. 그렇지만 그의 이름만 들어도 그녀는 아직도 괴로워 어쩔 수 없게 된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고 생각되는 그녀가 말이다. 미모와 막대한 재산, 호화로운 두 채의 저택, 열 명이나 되는 정부(情夫), 그리고 야릇한 취미생활. “브뤼노 얘긴 더 이상 들추지 말아주었으면……” “아 미안해. 금기로군…… 내가 당신을 신경질 나게 했나?” 그녀가 그에게 얼굴을 돌리자, 그 얼굴은 아주 부드럽고, 긴장이 풀린 듯하여 그 사나이의 간장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늦었었다. “당신이 날 신경질 나게 했냐구요? 그래요, 나 신경질 났어요. 커트, 더 이상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가 웃기 시작했다. 커트는 좀 둔한 남자였다. “날 파면시키고 싶다는 말씀이군. 당신데 집 주방장 다루듯이?” “그렇지는 않아요. 난 우리집 주방장을 몹시 아껴요.” 잠시 동안 그들은 서로를 응시했다. 커트가 그녀를 때리려고 손을 쳐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재빨리 일어나서 다른 남자와 춤을 추었다. 커트는 두 잔을 비우고, 떠나기 전에 쓸데없이 쳐들었던 자기 손을 바라보았다. 친구들이 그녀를 자기들 테이블로 맞아드렸다. 시간이 매우 늦었는데도 그녀는 계속 춤을 추었다. 그녀는 동이 틀 무렵에야, 맨 나중에 나이트클럽을 나왔다. 그 해 봄, 새벽이면 언제나 그러했듯이, 그 날도 푸르스름하고도 서늘한 여명이었다. 그녀의 자동차가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유니폼을 입은 꼬마 소년이 그 아름다운 악마같은 자가용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금방 창피스러움을 느꼈다. “너무 늦게까지 밤일을 시켜서 미안해.” 그녀가 다정하게 말했다. “이 차 속에서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보내고 싶어요.” 그 아이는 열다섯 살 내지는 열여섯 살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그 아이의 찬사가 너무도 솔직하여서 그녀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아이가 자동차 문을 열어주었다. 날씨가 차가웠다. 몹시 피곤했고, 또 시간도 매우 늦었다. 그녀는 어처구니없게도 이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어린 문지기를 쳐다보았다. 바람이 불자 그도 장식단추가 달린 꼴사나운 제복 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 시간에 도시는 텅빈 것 같았다. “같이 가다가 내려줘도 되겠니?” “저는 먼 곳에 살아요.” 그 아이는 손으로 차를 쓰다듬으면서 아쉬운 듯이 말했다. “스타른베르그 근처거든요. 기차를 타야 해요. ”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그 때에 고가도로 위로 한차례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가엾고도 귀여운 그 아이는 지친 나머지 졸고 있었다. 그녀가 그 애를 데려다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타거라. 나도 그쪽으로 가니까.” “종마사육장으로 가시는 거예요?” 그건 사실이다. 종마사육장, 아침에 나온 말들, 구보연습, 숲 속에 피어오르는 안개, 브뤼노…… 그녀는 브뤼노와 헤어지고 난 후 한번도 그곳에 다시 가지 않았다. 그녀가 삭막한 뮌헨 거리를 약간 속력을 내어 달리자, 꼬마는 벌써부터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아이는 황홀한 눈길로, 옆에 앉은 여인의 옆얼굴과 속도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건 우리집 옆에 있어요. 전 자동차와 말들, 그것만을 좋아해요…… 커서 기수가 되고 싶었는데 벌써 너무 커버렸나봐요…… 그래서 저는 나이트클럽에서 차를 봐주고 있지요, 얼마까지 속도를 낼 수 있으세요?” 그들은 고속도로 위로 접어들었다. 피곤해서 그녀는 천천히 차를 몰고 싶었으나, 옆에 앉은 꼬마 녀석 때문에 마음대로 속력을 줄일 수가 없었다. 그녀가 액셀을 밟자, 마즈라티가 튀어 오르며 배기가스를 뿜고는, 덜덜거리더니 시속 이백킬로로 부르릉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백킬로로 달리고 있는데, 너 괜찮니?” 하고 그녀가 물었다. 그는 낄낄 웃어댔다. 삐에로 같은 제복을 입고, 사춘기 소년의 커다란 손을 삐죽 내놓은 그 녀석은 정말 꼴불견이었다. 분명 차 안에 있는 그들 둘이 모두 우스꽝스러운 꼴이었으리라. 야회복을 입은 그녀와 변장을 한 그 아이. 그녀는 손을 뻗어 라디오를 켰다. 아름다운 선율이 차바퀴 밑으로 미끄러져가는 고속도로처럼, 아니 그녀의 관자놀이에 와닿는 바람처럼 들려왔다. “그런데 아침마다 그 종마사육장으로 가시나요?” 브뤼노와 헤어진 이후로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녀는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약 2년 전부터 말이다. 그녀가 어렸을 때 말에 태워 주곤 하던 나이먹은 조율사 지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금은 계산서를 보낼 때 어설프고도 침통한 말들을 몇 마디 적어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그가 말이다. 그녀는 갑자기 그가 보고 싶어졌다. 이제 아주 가까이 와 있다. 스타른베르그에서 이십킬로 떨어졌으니…… 그녀는 옆에 앉은 소년에게 몸을 돌리며, 충동적으로, “나하고 같이 종마사육장으로 가고 싶니? 구보연습 시켜줄 테니……”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폐가 되지 않으신다면 정말이에요…… 아, 아직 어두운데요!” 그녀는 생각했다. <정말 행복한 녀석이로군. 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질 못했어. 내가 사랑하던 브뤼노나, 내가 사랑하지도 않은 커트, 또 그밖의 아무도, 하지만 이 아이는 행복해. 비록 세 시간 동안만이라도, 그 정도만 돼도 괜찮은 거지.> 그리하여 그들은 호수를 끼고 돌고나서, 엷은 안개 속을 헤치고 들어가 종마사육장에 이르렀다. 새벽 6시에 처음 현관문을 열어준 사람이 지미였다. 그녀는 당황하는 그의 시선을 보았다. 긴 드레스를 입은 그녀와 소매가 긴 외투를 걸친 그 꼬마 문지기. 그녀는 차에서 내려 지미의 품에 뛰어들었다. 그는 말을 다루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핼쓱하고도 온후한 얼굴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녀가 알아불 수 있는 트위트 직물로 된 낡은 윗도리에, 밤새 피운 담배가 몸에 배서 향긋한 파이프 향내를 야릇하게 풍기고 있었다. “로라부인, 로라부인…… 드디어 오셨군요……” 하고 말하면서 그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미 당신이군요…… 계셨군요……” “군터, 군터 브라운이라고 해요.” 꼬마 문지기가 말했다. 황홀한 표정으로 그가 인사를 했다. 말들은 외양간에서 앞발로 땅을 걷어차고 있었고, 남자들은 건초를 휘젓고 있었다. “가셔서 커피나 드시죠” 지미는 작고 아늑한 한 사무실로 그들을 밀어넣다시피 끌어들였다. 벽에는 말을 타고 있는 로라와 브뤼노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로라가 브뤼노의 등에 기대어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로라는 즉시 목덜미에 흘러내린 금발을 알아차리고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지미도 눈길을 돌렸다. “요즘 잘 돼가나요. 마굿간 말예요” “제 보고서 받으셨을 텐데요. 무척 잘 되어가고 있어요! 아토스가 지난 주에 파리에서 또 이등을 했습죠. 그리고……” 그러나 그녀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처럼 돈은 많으나 가련한 사람들과 어울려 바하마 군도를 거쳐, 멕시코에서 카프리 등지로 휩쓸고 다니느라고, 이년 전부터 지미가 보내주는 보고서를 읽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차마 그에게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엔 별다른 이유가 없고, 오직 브뤼노를 잊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이제 그녀는 잊을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는데 그것이야말로 제일 힘든 일이었다. “구보를 보러 가시죠. 저기엔 망아지 한 놈이 있어요! ……마리크의 새낀데…… 아주 멋진 데블 녀석이랍니다.” 하고 지미가 말했다. “이런 옷차림으로?” 그녀는 야회복을 가리키며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졸려 못 견딜 지경이었으니…… 브뤼노와 찍은 사진이 그녀의 신경질을 건드렸다. “구보요? 정말 구보에요?” 아이 좋아…… 꼬마 문지기는 잠에서 깨어나 호기심에 찬 두 눈을 번득거렸다. 얼마나 멋있는 밤이람! “부인의 소지품들은 여전히 이층방에 있어요. 경마용 바지와 장화말예요…… 구보를 구경하러 가시는 데는 그 차림이면 흙탕 속이라도 갈 수 있어요.” 지미가 자상하게 일러주었다. 그들 두 사람은 애원하는 눈빛이었다. 한 사람은 육십 세, 또 한 사람은 십칠 세. 그런데 그 눈빛은 항상 남자들이 그녀를 꼼짝 못하게 만들던 바로 그런 어린애 같은 시선이었다…… 좋아요, 결국 그녀는 옷을 바꿔입고, 구보 연습을 보고 되돌아 왔다. 아주 좋았다…… 그런데 이층방에서 장화를 끌어당겨 신으면서, 그녀는 지치고, 구토가 나올 듯 두근거리는 심장을 잠시 동안 진정시켜야 했었다…… 확실히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과음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미의 낡은 지프를 타고서 약속한 장소로 갔다. 봄기운이 배어 푸르고 희끗희끗한 나무 밑둥이에서, 말들이 벌써 힝힝거리고 있었고, 말들의 엉덩이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잘 다져진 땅 위에, 3킬로미터의 길다란 경주로가 그들 앞에 펼쳐졌다. 그러자 그녀는 온갖 기억이 되살아났다. 안장에 오르기 전에 느끼던 흥분, 동시에 출발하여 귀를 째는 듯한 구보소리, 이쪽 저쪽에 집요한 부츠 발길질…… 그리고 얼굴에 튀기는 흙, 그리고 불안과 짜릿한 흥분…… 정말이지, 그녀는 브뤼노와 함께 그런 맛을 즐겼던 것이다.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니었을 때에. “놀라게 해 드릴 일이 있어요. 저기 있구나, 꼬마야, 내려온.” 하고 지미가 말했다. 온통 검은색의 훌륭한 말 한 마리가 그녀 앞에 나타나자, 그녀는 금방 알아보았다. 그것이 바로 마리크의 새끼, 데블이었다. 데블도 그녀를 쳐다보았다. 소년 마부들도 모두 그녀를 쳐다보았고, 또 지미와 그 꼬마문지기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인께서 직접 녀석을 시험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그 옛날 좋았던 시절처럼 말예요.” 지미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두려웠다. 몹시 두려웠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술로 지새운 밤들, 별의별 어리석은 짓들을. 새벽의 피로가 손과 뼈속까지 스며드는 그 전율을 결코 그들은 알 수 없으리라. “이건 너무하군.” 그녀가 중얼거렸다. “2년 전부터 말을 타지 않은 걸요, 지미.” “그러시다면 데블 녀석이 부인을 다시 태워드릴 거예요.” 그는 웃었다. 아, 남자들은 가끔 그들의 체력을 가지고, 그들의 균형을…… 하지만 그들은 또 저런 눈초리를 하고 있으니…… 꼬마 문지기의 입에서 벌써 격한 탄성의 소리가 터져 나왔고, 지미는 줄곧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녀는 데블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으면서 말의 목덜미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때 말과 자기 사이에 이미 그 어떤 약속이라도 있었듯이 그녀는 데블이 떨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지미는 두 손을 뻗어 그녀가 말에 올라타도록 해주었다. 그녀의 심장이 너무나 세게 고동치는 바람에, 지미의 말을 거의 들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똑바로 앞을 보세요……좋아요……출발하세요.” 그러자 말들이, 드디어 자유롭게 되기나 한듯이, 아침 바람 속을 헤치며 달려갔다. 그녀는 별안간 이것이 좋지 않은 종말을 가져오리라 예감했다. 백 미터, 그리고 이백 미터를 달렸다. 흙이 얼굴에 튕겨 오르자, 그녀는 이와 같은 마지막 고별을 맞아주는 흙에 대해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에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그녀는 안장에서 서서히 미끄러져, 데블의 말굽에 온통 채이는 것이었다.
<거 이상하군.> 그 솔직한 의사의 집을 나와 층계를 내려오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내 두 다리가 하는 짓이 이상하단 말이야. 이 부자집 형편없는 계단을 똑바로 내려가고 있으니. 선고를 받아 생각조차 하기 싫은 죽음을 향해 똑바로 내려가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그의 두 발, 그 자신의 두 발, 때로는 댄스 스텝을 밟느라 여자의 발 사이에서 날렵했고, 또 어떤 때는 해변가에서 맨발로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것을 그가 주시하곤 하던 그 두 발. 그런데 지금, 일종의 혐오와 공포와 경악을 가지고, 그는 바로 그 두 발이 지나치게 솔직한 그 의사네 층계를 내려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죽음이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그 무엇이었다. 마르크, 그는 죽을 수 없었다.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의사의 시선과 그 자신 사이에는 착잡하고 종잡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것은 그의 신체사진인데, 어느 부분이건 그에겐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부분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자기 생각에는 외설사진이었고, 사람들은 X-레이 사진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 말엔 창백한, 푸른, 바보스런 등의 의미를 나타내는 어휘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모음중복 현상이 있었다. 늦어서 숨을 헐떡이며, 또 자기의 심장을 걱정하면서 층계를 오르던 마르크와, 그리고 자기 운명을 의식하기도 하고, 동시에 의식하지 않기도 하면서, 체념한 듯 조용히 바로 이 층계를 다시 내려오는 마르크사이에는 단지 반 시간 차이밖에 없다는 사실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일이다. 냉정하고, 미안해하고, 예의바르고, 그리고 그의 냉담함조차도 열광적인 한 남자와 보낸 반 시간. 그는 “아시겠지만 석 달이면 폐가......” 하고 말했다. 그런데 마르크, 아무도 그 다음날 죽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던 마르크가 <나, 내가 죽어간다> 라는 정확한 생각에 살갗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의사로 하여금 유럽에서는 아직 관례로 되어 있지 않은 솔직한 대답을 하게 하느라 온갖 애를 썼다. 그는 아내와도 별거중이고, 그의 부모에 대한 책임도 없고, 또 그가 태어나게 한 몇 명의 아이들한테도 역시 그는 어떤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다. 물론 애매함속의 정확성 때문에 그는 그처럼 명백한 판단을 내려야 했던 것이다. 요컨대 의사들이란, 비극적이라고 말해야 할 경우, 그처럼 비참한 환자에 대해서 어떤 혐오감을 느끼는 것일까? 사실, 그는 비참한 인간이었다. 불행하게도 암이 그에게 안착을 한 것이다. 우스꽝스런 암들도 있다. 결장암이니, 피부암이니 하는 신체 여러 부분의 암들 말이다. 그가 걸린 암은 유명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는 석 달 후엔 점잖게 폐암으로 죽을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젊고, 명랑하고, 또 방랑적이라고 느끼면서 나지막이 껄껄대며 웃었다. 무엇보다도 그가 장암에 걸릴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며 끔찍스럽고 거의 의기양양한 너털웃음을 웃기 시작했다. 그런 경우라면 그가 자기 자신에게 고백하고 싶어도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말하기가 더 어렵고 더 복잡한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어린애 설사병이나 외래병에 대한 기억을 보여주는 이 바보 같은 신체기관을 그가 어떤 이유로 포착할 것인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단 한번도 그는 변명할 필요가 없었고, 딱 잘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자기가 쓰러진다면, <난 그것 때문에 죽어가오.> 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여느 때처럼 <내가 당신 곁을 떠난다면 이것 때문이라오.> 라던가, 아니면 <내가 멀리 가버리는 건 그것 때문이라오.> 라고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이것과 그것이라는 두 단어는 거짓이니까. 그는 이번만은 자기 감수성의 연약한 선이나 자기 허영심의 강한 선 뒤로 숨을 필요가 없었다. 그도 자기의 죽음을 변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가 층계의 마지막 커브를 돌 때, 갑자기 인생이라는 단어가 머리글자와 함께 대문 문턱에 나타났다. 그래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밖에는 유난히 밝은 태양이 빛나고 있었는데, 벌써 그는 환자들의 어두운 방 속에서 위로해 주던 친구들과 생각에 잠긴 의사들 사이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태양은 이제 정말 후회로 가득 찬 해바라기 신세였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생전 처음으로 마르크는 용기의 순간, 진정한 용기의 순간을 얻게 되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인도 위로 곤두박질하며 큰 길과 사람들과 도시들을 관찰했다. 그리고는 길모퉁이 카페를 향하여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놓기 전에, 마치 귀머거리 벙어리 마냥 거기 길가에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 카페는 전에는 한번도 눈여겨 본 적은 없지만 자기 기억 속에는 영원히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영원히>라는 말이 그에겐 석 달을 뜻하고, 또 이 모든 것이 우스꽝스럽고, 가증스럽고, 치사하고 또 신파조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그가 그 누구의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이라면 딸은 자기 어머니를 향해 달려가고, 남자는 자기 아내를 향해, 그리고 허황된 말을 믿는 사람은 자기 운명을 향해 달려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단지 포르미까와 고용인들과 맥주로 법석이는 전형적인 카페에 들어갔다. 허리를 카운터에 기대자, 한 순간 이와 같은 나무나 대리석으로 된 벽에 기대고 앉으면 항상 느껴지던 그 친근하고도 낯익은 흐뭇한 감정을 느꼈다. 카페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그곳은 그에게 하나의 선물같이 느껴졌다. 보이를 부르자 그는 마치 한 척의 범선마냥 즉시 그에게로 휘저으며 왔다. 그는 우선 빼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사실 그는 왜 빼르노를 청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늘 아이스 냄새를 몹시 싫어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냄새는 그에게 해변이랑, 여자의 육체랑, 조가비랑, 해초, 부이야베스와 그리고 성공적인 크롤경기를 상기시켜 주었고, 또한 그것이 일종의 생활의 향기로 변하는 것을 그는 의식했다. 그는 잔디와 화단, 폭풍우와 서겐 바람이 기다란 오솔길을 생각하게 하는 칼바도스 한잔을 청할 수도 있었고, 편도시럽을 주문할 수도 있었으리라. 이것은 어머니의 머리카락과 젖가슴을 연상케 하고, 그가 어렸을 때 <그들의> 방에서 맡곤 하던 습기찬 목기 냄새도 생각나게 하리라. 그는 또한 카운터에서 자기 술잔에다 샤넬 5번 향수와 팜므 드, 봬 베르드 - 그 향수의 이름이 무엇이었지? -를 주문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네스라는 이름의 여인인 게르랭 때문에 그 자신이 흘린 눈물의 향기는 어떨까? 그 여자는 다시 만나볼 수 없었지만 파리의 거리와 향기와 열기가 지닌 온갖 힘이란 굉장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바에 있는 이 모든 사람들이 옛날부터 아는 친구인 동시에 이방인 같았다. 그 자신은 후회할만한 짓은 별로 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듯이, 그는 솔직히 말해서, 이 목표에서 저 목표로, 이 잠자리에서 저 잠자리로, 이 열정에서 저 열정으로 한가로이 전전하고 다녔었다. 그런데 그는 어딜 가나 언제나 부딪혀 찢겼고, 결코 무관심하거나 무감각하지는 않으면서도 마치 트랙터 주위를 빙빙 맴돌며 아무리 따라다녀도 지치지도 않고 날개를 파닥거리는 늙은 갈매기마냥 가끔은 파렴치하고 얼빠진 사람 같았다. 그렇다. 그는 무슨 일이고 저지를 수 있는 선량한 바보였다. 그리고 정말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놓고 보아도, 심각하게 자책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한편 그가 죽는다는 것이 확실하고 시간적으로 확정되었다는 사실도 그에게는 스캔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패배당하고, 주사를 기다리며 비틀거리는 그가 이제 피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디지 않아도 되도록 그는 죽음을 재촉하고 결단을 내려야했던 것이다. 그건 안돼. 그가 생명을 끊어버리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 그렇게 할 용기가 있을는지는 확실치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매력적이고 멋있는 최고의 마르크, 그 다정한 마르크로 다시 변했다. 그는 자기 잔을 쳐들고, 술집 주인을 향해 약간 우스꽝스런 제스처를 지어 보였다. “여보게!” 그가 벽력같은 소리를 내질렀기 때문에 떠들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단되었다. 여덟 명 내지 열 명의 손님과, 친절한 두 보이까지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여보게, 내가 여기 계긴 모든 분들께 한 잔 사고 싶은데, 내가 생끌루 경마시합에서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지금 막 들었단 말일세.” 가벼운 혼미상태가 가시고, 분위기는 재빨리 명랑해졌다. 드디어 그 열 명-그의 마지막 증인들- 모두가 그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리고 축제 기분으로 그를 축하해 주었다. 그는 그 사람들과 함께 여러 가지 말로 서로의 건강을 -물론 그 자신의 건강도- 기원하면서 술을 마셨고, 조심스럽게 계산서를 지불하고는 그 의사네 집 현관에서 10미터 떨어진 곳에 둔 자신의 자동차에 올라탔다. 아직도 건강이 꽤 좋아서, 아직도 우연인 듯이 망뜨라죨리 못 미쳐 있던 플라타너스 나무에 부딪혀 그대로 거기에 머물러 있을 만큼 그는 힘도 있었고 침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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